무급휴직 때 시나리오 쓴 직장인, 1,000만 영화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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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급휴직 때 시나리오 쓴 직장인, 1,000만 영화 만들다


윤제균 감독은 영화를 전공하지 않고도 충무로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조폭 코미디로 출발해 웰메이드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진화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000만 관객이란 기록을 두 번 연달아 쓴 흥행 감독이 되었지만, 

윤제균 감독의 인생 진로는 원래 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부산 사직고 재학 때 상위권 성적을 달리던 그는 

서울대 법대에 응시했다가 두 번 떨어졌고, 

삼수 끝에 고려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영화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일반 관객의 입장이었고, 

학교를 마친 후엔 당연히 직장인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외국계 가전업체의 한국지사 임원까지 지냈던 아버지가 주식 투자에 실패하고

 세상을 떠난 후, 대학 시절 내내 과외 아르바이트만 네 군데를 뛰며

 학자금과 생활비를 벌던 그는 1996년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

윤제균 감독의 데뷔작 ‘두사부일체’. 조폭 두목이 고등학교에 
진학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코미디와 액션을 펼쳐낸다. CJ ENM 제공
 
 ◇광고회사 다니다 시나리오 공모 

연봉 3,000만원을 받는 상업은행과 연봉 1,800만원인 LG애드 두 군데에 동시에 붙었는데, 

윤 감독의 선택은 광고회사인 LG애드였다. 급여는 적더라도 

광고 쪽에서 일하는 편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광고회사 전략기획팀에서 4년 동안 일하며 대중 트렌드, 

시장 동향을 파악하고 기획서와 예산안 작성에 매달렸던 마케터로서의 

경험은 훗날 영화감독 겸 제작자로 기획과 제작 부문에 필요한

 상업적 감각을 키우는 계기가 된다. 이때 입사 동기가

 ‘여고괴담 - 두 번째 이야기’(1999)의 감독이자 나중에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에서 제작자로 만나 손잡게 되는 민규동 감독이었다.

“일단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때 공채로 함께 들어온 동기가

 바로 윤제균 감독이다. 신입사원 연수에서 500여명이 글을 써서 

딱 두 편이 뽑혔는데, 그게 바로 제균 형과 나였다. (웃음) 제균은 전략기획팀, 

나는 영상팀에 들어갔는데 제균은 사내회지에 콩트를 쓰는 등

 아주 웃긴 친구로 유명해져서 얼마 뒤 카피라이터 팀으로 옮겼고,

 나는 회사를 나와 영화아카데미로 갔다. 그런데

그 역시 방송드라마 작가를 하겠다며 회사를 나왔다.

”(민규동 감독 글, 주성철 엮음 ‘데뷔의 순간’)

IMF 외환위기의 한파가 밀어닥치면서 윤 감독의 인생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대기업마저 휘청거리며 구조조정을 시행, 

인력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하고자 했는데, 이때 대리 직함을 달았던 

윤 감독은 직원마다 번갈아 가며 갖는 무급휴가의 대상이 되어 

강제적으로 일을 쉬게 된다. 아내마저 주부사원 우선 퇴직에 걸려 

직장을 그만두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쳤다.

대출 이자 갚기는커녕 교통비와 담뱃값도 없던 이때, 그의 선택은 골방에

 틀어박혀 부업 삼아 노트북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일이었다. 

뒷날 이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궁지에 몰린 샐러리맨이 청부 살인업자로

 거듭난다는 내용의 ‘킬러 윤대리’를 준비하다가 엎었다고 한다.

회사의 경비 지원으로 단체 신혼여행을 홍콩으로 다녀왔던 경험,

 그리고 평소 흥미를 갖고 읽던 범죄 실화와 법의학 관련 서적에 

착안한 윤 감독은 신혼여행 중 남편이 살해되고 범인은 함께

 간 여행객들 가운데 있다는 내용의 시나리오 ‘신혼여행’을 쓰게 된다.

영화에 문외한이었던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던 계획은 “신(장면) 하나당 

1분, 120신이면 2시간 영화 완성”이니 “하루에 10신씩 일기 쓰듯” 쓰면

 “12일이면 영화 한 편이 완성”된다는 단순한 것이었다.

 무급휴가가 끝나고 직장에 복귀한 윤 감독은 휴게실에서 

커피를 타먹던 중 잡지에서 태창흥업 시나리오 공모전 기사를 보고 

묵혀두고 있던 ‘신혼여행’의 시나리오를 마감에 맞춰 제출했는데,

 덜컥 대상에 당선되어 받은 상금 3,000만원으로 대출금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윤제균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색즉시공’은 코미디와 섹스를 
결합해 이후 비슷한 영화의 유행을 주도한다. CJ ENM 제공
 
 ◇감독 없어 스스로 연출한 ‘두사부일체’ 

회사를 옮겨 벤처기업 심마니에서 팀장으로 네티즌의 소액 공모를 받아 

영화에 투자하는 일을 담당하게 된 윤 감독은 자연스럽게 영화사 

사람들과 안면을 트게 된다. 시나리오 공모 입선 경력을 알고 있던 

영화인들은 종종 그에게 “좋은 시나리오 하나 없어?”

 묻곤 했는데, 이것이 기회가 되었다.

대학 교수인 매제로부터 ‘조직에서 손을 씻고 공부하러 온 친구’가 

학생 중에 있다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던 윤 감독은 대학교 

3학년 때 접했던 서울 상문고 비리 재단 반대 시위 사건의 기억을 합쳐 

교육 현장의 비리를 소재 삼은 코미디물을 쓰게 된다. 

조폭 코미디의 한 전형을 이룬 ‘두사부일체’(2001)였다.

하겠다고 나서는 감독도 배우도 없자 윤 감독은 손수 연출을 

맡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현장 경험 한 번 없었지만 

광고사에서 일했던 수완을 발휘해 탄탄한 기획서를 만들고,

 2주간 50여편의 갱스터 영화를 편집해 15분 분량으로 압축한 

데모테이프를 준비한 윤 감독은 영화 제작 승인과 투자를 얻어낸다. 

두 달 남짓한 빡빡한 일정 속에서 완성된 ‘두사부일체’는 350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냈고 윤 감독은 성공적인 감독 데뷔식을 치렀다. 

이 영화에서부터 윤 감독이 추구한 “한참 웃기다가 끝에 

감동을 주는 방식”은 이후 “코미디 70에 감동 30”, 이른바 ‘7대 3의 공식’이란 

말이 붙으며 한국형 코미디 영화의 관습으로 정착된다.

‘두사부일체’가 성공한 뒤에도 윤 감독은 쉬지 않고

 섹스 코미디 ‘색즉시공’(2002)에 들어갔다. 시나리오는

 아현동 반지하방에서 ‘두사부일체’를 쓰면서 같이 집필해둔 상태였는데,

 그 내용은 감독 본인의 대학 시절 추억을 상당 부분 반영한 것으로

 쥐약 묻은 빵이나 정액 계란프라이는 후배의 실화에서 따온 것이었다고 한다.

청년들의 사랑과 성 풍속, 대학가 문화의 일면들을 희화화한 

‘색즉시공’이 흥행(관객 420만명)해 연타석 홈런을 터뜨리면서 

흥행 감독 윤제균의 입지는 공고해진다.

 그러나 ‘두사부일체’가 ‘달마야 놀자’ ‘가문의 영광’(2001)과 함께 조폭 코미디의

 유행을 선도했던 것처럼, 이 영화의 영향으로 한동안 한국 영화계에는

 ‘몽정기’ ‘마법의 성’(2002), ‘은장도’(2003) 등과 같은 비슷한

 유의 섹스 코미디 기획이 범람하게 된다.

“제 영화 자체가 너무 대놓고 얘기하고, 직선적이고 세련되지 못하게

 날것으로 리얼하게 다 보여주는 그런 코미디여서 그런 것 같아요.

 제 영화를 수준 높다고 얘기하면 자기의 수준이 깎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진 분들도 있는 것 같구요. 

웃음) 물론 제 영화 자체가 앞으로는 더 세련되어지고, 

웰메이드 쪽으로 가겠지만요.”(지승호 인터뷰집 ‘감독, 열정을 말하다’)

영화 ‘해운대’는 쓰나미를 소재로 평범한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그려낸다. CJ ENM 제공
영화 ‘국제시장’은 윤덕수라는 사내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돌아봐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라는 평가를 받았다. CJ ENM 제공
 
 ◇‘낭만자객’ 실패 딛고 1,000만 감독으로 

그러나 코믹 무협을 표방한 ‘낭만자객’(2003)으로 윤 감독은 큰 좌절을 맛보게 된다

. 전작들의 반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관객 94만명이라는 초라한 성적표에다 

영화주간지 필름 2.0에선 ‘그해 최악의 영화, 최악의 감독’으로 

이 영화와 윤 감독을 꼽았을 만큼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참혹한 실패였다.

제작자로 한발 물러나면서 3년간 반성과 점검의 시간을 가진 윤 감독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쓴 유성엽 작가의 시나리오를 쥐고

 배우 하지원, 임창정과 다시 손잡은 ‘1번가의 기적’(2007)으로 한층

 성숙해진 휴먼 드라마를 선보인다. 재개발 구역 주민과 철거 용역 깡패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275만 관객을 모으고 평단의 호평까지

 받으며 바닥까지 추락했던 그의 위상을 다시 세운 재기작이 되었다.

JK필름을 이끄는 제작자, 기획자로서 윤 감독의 발상은 

한국 대중영화의 블록버스터화 전략으로 이어졌다.

 “할리우드의 80% 수준에 이르는 SF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테크놀로지와 코미디를 연결하는 작품을 언젠가 만들 거다”

(영화주간지 씨네 21 2003년 12월 11일 자)던 그의 장담은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에서 모티브를 얻은 한국형 재난 영화 

‘해운대’(2009), 할리우드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처럼 한 소시민의 연대기로 

한국 근현대사 전반을 훑는 대작 ‘국제시장’(2014)으로 현실화한다. 

‘국제시장’은 표준근로계약서를 정착시켜 영화 현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모범적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7광구’(2011), ‘스파이’(2013), ‘공조’(2017), ‘협상’(2018)과 같이 

JK필름이 쏟아낸 다수의 기획작은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기성 할리우드 영화의

 콘셉트에 신파와 코미디를 가미한 형태로 표준화, 

획일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대기업 자본의 주도로 재편된 영화계는

 창작의 활력을 잃은 채 안전한 기획의 기성품 영화들을 양산해 냈고, 

감독의 개성이 사라진 한국 영화는 퇴보의 수렁으로 발을 들이고 있었다.


조재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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